북경비전교회

주님과 함께 (목사님 칼럼)

설날

by on 1.22, 2012, under 주님과 함께 (목사님 칼럼)

설날

설날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입니다. 중국에서 맞이하는 설날이라서 어릴적의 그설레임은 나질 않습니다마는 설이란 새해의 첫머리란 뜻이고 설날은 그 중에서도 첫날이란 의미를 지닙니다. 우선, 설날을 ‘낯설다’라는 말의 어근인 “설”에서 그 어원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날은 ‘새해에 대한 낯 설음’이라는 의미와 ‘아직 익숙하지 않는 날’이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들 합니다. 설날은 묵은해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해에 통합되어 가는 과정이라 합니다.

다음으로 설날은 “선날” 즉 개시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 이라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이 “선날”이 시간이 흐르면서 연음화되어 설날로 와전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설날을 “삼가다“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에서 그 어원을 찾기도 합니다. 이는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신일이란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란 뜻인데, 이는 완전히 새로운 시간 질서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생긴 말이라 합니다. 한편 설날은 원일·원단·정조·세수, 세초·세시·연두·연시 등의 한자어로도 불립니다.

설날이 언제부터 우리 민족의 명절로 여겨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민족 최대 명절임은 사실입니다. 이러한 명절에 할일을 무엇이겠습니까?

명절에 우상 숭배하는 죄를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조상에게 절하는 것이 왜 죄가 됩니까? 나를 낳으시고 길러 주신 부모님에게 존경.을 표하는 마음에서 절하는 것이지 무슨 신에게 히는 것이 아니므로 그것이 우상 숭배일 수가 없지 않습니까?”돌아가신 분에게 절하는 것은 존경의 표시이지, 무슨 신에게 절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성경에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고 했지, 죽은 분에게 제사하는 것을 금했다는 말이 어디 있는가?합니다. 그럴 듯싶은 말입니다. 그러나 제사는 분명히 우상 숭배입니다. 돌아가신 분들에게 제사를 드림은 귀신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제사에 보면 신이 내리게 하는 강신과 내린 신에게 절하는 참신의 순서가 있습니다. 즉 분향재배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온다고 믿고 하는 의식인 것입니다. 제사를 지내는 이유가 자기 조상이 돌아가신 뒤에 그 영혼이 여기저기 떠다니다가 제삿날이나 무슨 명절날에 와서 음식을 먹는다는 사상에 젖어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세상에 있는 식구나 친척들과 가까운 곳에서 방황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죽으면 가야 할 곳으로 가고 맙니다.

예수님을 잘 믿던 영혼들은 천국으로 가고, 예수님을 믿지 않던 영혼들은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조상의 영혼을 위하거든 제삿날이나 명절날 하나님께 추모 예배드리면서 인간의 온 영혼을 주관하시고 천국과 지옥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지은 죄 중에 가장 큰 것은 무슨 살인이나 간음보다도 우상숭배 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이 가장 진노하시는 우상숭배는 어찌든지 거부해야 합니다. 참된 효는 예수 믿는 일인 줄 알고 전도해야 합니다. 민족 문화나 전통을 기독교 문화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경천애인의 정신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라신 가르침으로 높여 가야 합니다.  우리 민족은 복 받은 민족입니다. 우리는 성경적인 민족명절과 문화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것을 버리지 말고, 성경적으로 발전시켜 나갑시다. 우리가 우리의 민족명절을 소중히 여기고 성경적으로 지켜나갈 때, 우리는 유대 민족보다 더 뛰어난 민족이 됩니다. 민족정신을 성경적으로 바꿀 때, 우리는 세계를 주도하게 됩니다. 우상을 섬기지 아니하고 전도하며 효도하고 기독교 문화를 만들면서,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베이징에서 외롭지 않는 명절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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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도둑 2

by on 12.20, 2011, under 주님과 함께 (목사님 칼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부 관계 부모님과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습니까?

배우자 얼굴만 부모님의 얼굴만 증오하지 마십시오. 그 배후에 있는 악의 영을

감지하십시오. 자식에게 시달리는 부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에게 시달리는 자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배후에 역사하는 악의 영을 간파하십시오. 학교나 이웃사이에서 인간 관계 때문에 괴롭습니까? 아니면 공부나 일이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고민합니까? 악의 영은 그 배후에서 문제를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퇴근하지만 악의 영은 언제나 활동합니다. 퇴근이란 없습니다.

원한을 품은 부부 관계 속에도, 멀어진 부자 관계 속에도 그리고 노사 분규의 현장에도 악의 영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마귀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마귀는 여러분보다 강합니다. 마귀는 어떤 사람보다도 힘과 지혜가 뛰어납니다. 마귀야말로 Superman입니다. 초인적인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를 공중에 권세 잡은 자 라고 에베소서 2장 2절은 표현합니다. 다른 곳에는 이 세상 신 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싸울 마귀의 전략을 알아두십시오.

그래야 그의 전략에 말려들지 않습니다. 그의 특징적인 전략 첫째가 무엇입니까?

욕하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중상 모략하고 비방하는 것입니다.

특히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참소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비난하는 것을 즐깁니다. 하나님을 향한 선한 열심을 가지고 일하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교회 나와서 예배시간에 졸고 있으면 그는 그치지 않습니다.

그래 자라 그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면 마귀가 바짝 긴장을 합니다. 호사다마 라는 표현이 있지요?

그렇습니다. 선한 일이 되어질 때마다 짓이겨 버리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의 기본 전략에 말려들지 마십시오. 남을 욕하지 마십시오. 남을 비난하지 마십시오. 남을 모함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의 편이라면 성도들을 비방해서는 안됩니다. 칼끝을 동료 신자를 향하게 하지 마십시오. 총구를 아군을 향해 겨냥하지 마십시오. 시험에 빠져 자중지난을 일으키지 마십시오. 우리는 지금 영적 전면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휘 체계를 따라 일사분란하게 싸워야 합니다.

군인들이 자기 동료를 향해서 총질을 해대면 싸움이 무엇이 되겠습니까?

마귀는 성도 사이를 이간시키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비난하게 되는 시험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여러분의 입술이, 귀가 성도를 이간시키는 도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마귀는 우리보다 영리합니다. 그의 전략에 놀아나지 않도록 깨어 있어 기도해야 합니다. 마귀는 또한 그 나름의 지휘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 대함이라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 라는 표현만 좀 더 살펴봅시다. 어두움은 마귀의 특색입니다. 그는 어두움 가운데서 활동하기를 좋아합니다. 뒤에서 전을 폅니다. 뒤에서 비방하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하기 좋아합니다. 뭘 모르도록 하기에 능수입니다. 욕심에 눈이 어둡도록 합니다. 욕망에 눈이 어둡도록 합니다. 그리고 나면 나머지 모두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자신의 말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지 마귀를 기쁘게 하는지 생각조차 못하게 합니다. 자신의 행동이 자기 영혼에 유익할 것인지 유해한 것인지 알아보지 못하게 합니다. 영적인 호소도 모르고, 죽음도 직면하지 못하고 죽음 너머의 세계도 준비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공동체 속에서 성도가 서로 교통하며 사는 기쁨도 모르고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으리니 라는 엄숙한 진리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귀의 어두움 속에 사는 자를 불쌍히 여기십시오.

그를 구출하기 위해 필요한 대가를 기꺼이 대신 지불하십시오. 공동체를 비난하고 공동체를 괴롭히고 공동체를 이간시키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배후에 활동하는 악의 영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끝으로 이제 적을 아는 동시에 나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간입니다. 결코 마귀의 맞수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이 그의 맞수가 아니라는 것을 먼저 인식하는 일입니다. . 우리의 싸움은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함입니다. 땅에 있는 인생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악령에 대한 싸움에 우리는 부름받아 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힘과 우리의 지혜로는 그를 맞붙어 싸울 수 없습니다.

바울은 영적 싸움의 경험이 풍부한 노장답게 두 가지 명령을 합니다.

첫째는 주안에서 강건 하여지라 고 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고 말합니다. 둘 다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 순서도 중요합니다. 문제는 주안에서 강권해져만 합니다. 그리고 나서 영적무장을 해야만 합니다. 믿기만 하고 주님만 의뢰하기만 하면 된다고 해도 안됩니다. 무기만 갖추면 된다고 해도 실패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역전의 용장답게 바울은 우리에게 두 가지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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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도둑 1>

by on 12.14, 2011, under 주님과 함께 (목사님 칼럼)

여러분은 마귀나, 사탄, 악령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습니까?

성경에는 악령이 분명히 있고,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전 5장8절에 ‘여러분의 원수 악마가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아 다닌다고 합니다.’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악한 영의 세계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관심합니다.

악령에 대한 2가지 오해 첫째, 악령에 대해 너무 겁을 내고 집착하는데, 그럴수록 더 빠져들게 되고, 결국은 악령에 짓눌려 일상생활까지 어려워지게 됩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대상은 악령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둘째, 마귀가 없다고 무시해버리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에는, 자신이 마귀에게 속으면서도 속는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불쌍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악령은 굉장히 교묘하고 간사하게 활동합니다.

가정에도 보면, 유난히 마귀가 잘 역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분란이 일어나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마귀가 들어 쓰는 그 사람입니다. 그러나 본인의 의지대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마귀에게 조정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가정뿐 아니라, 셀이나 교회에도 이런 사람 있지만, 불쌍히 여기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영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시대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분별력이 없으면 마귀에게 속아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악령과 싸워 이기려면 1. 영적 싸움의 대상부터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싸울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악한 영입니다.

마귀의 속성은 첫째,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비입니다. (요 8:44)

둘째, 다른 사람을 헐뜯고 이간질하는 참소자입니다. (계 12:10) 셋째, 부부, 형제, 성도 사이 등 모든 관계를 깨뜨리는 파괴자입니다. (벧전 5장) 이러한 마귀를 속성을 안다면, 더구나 사람을 미워하면 안 됩니다.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마귀의 역사요, 하나님의 역사는 영혼을 사랑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악령이 일하는 방법 직접 활동하지 않고, 반드시 사람을 이용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도 준비된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연단과 훈련을 통해, 겸손하게 만드셔서 은혜의 통로로 사용하십니다. 마귀는 반대입니다. 마귀는 절대로 겸손한 사람은 못 씁니다. 마귀는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어, 최고로 교만해지면 그때 들어 씁니다. 마귀가 사람을 이용하는 방법은? 1) 극단적인 생각을 심어주고, 극단적인 감정을 심어줍니다.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면 사람은 무엇을 생각합니까? 자살입니다. 공부 때문에, 가정불화로, 돈 때문에, 배신당해서…… 등 자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자녀에게도 마귀는 절망감과 자살충동을 심어주는데, 이는 마귀의 방법입니다. 2) 교만하게 만들어서 이용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남이 잘되거나, 인정받는 꼴을 못 봅니다. 모든 사람이 경쟁자이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교만한 자는 특히,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절대로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있거나, 더불어 하지 않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혼자 똑똑하고 잘났기 때문에, 남들과 함께 하는걸 싫어합니다. 수준이 안 맞아서, 얘기가 안 통해서……’등의 이유로 셀 모임에 나오길 꺼려합니다. 이것은 분명, 마귀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라는 걸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마귀는 단단한 조직과 그룹을 가지고 일합니다. 원래 마귀는 루시퍼라는 천사장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등하고자 하는 교만에 빠져 하늘로부터 쫓겨나 사단이 된 것입니다. 그때 그의 부하들도 함께 땅으로 내쫓겼습니다. (계12: 9) 마귀의 역사를 살펴보면 한 사람만 망가뜨리지 않습니다. 그 사람으로 인해 모두 병들게 합니다. 우리는 이 예수의 이름으로 사단을 이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다른 이름으로는 안 됩니다. 오직 예수의 이름과 성령의 능력으로만 사단과 더러운 귀신들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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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무장>

by on 12.06, 2011, under 주님과 함께 (목사님 칼럼)

영적무장

주의 백성들이 승리할 수 있는 그 비결은 바로 영적 무장에 관한 말씀입니다.

6가지의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힘입을 것을 말씀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게 해야 영적으로 강한 군사가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만 마귀와 싸워 승리하는 강한 영적 군사가 될 수가 있겠습니까?.

강한 영적 군사의 첫 번째 단계는 바로 ‘주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있으면… 주님이 우리의 보호자가 되십니다. 주님이 성벽이 되어 주시고, 나의 요새가 되어 주시고, 주님이 우리들의 갑옷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 안에 있으면 아무 염려가 없습니다. 사탄의 무기가 아무리 날카롭고 강하다 할지라도 주님을 이기고 우리를 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사탄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 안에 있으면 마귀는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 안에 있지 않으면 우리는 연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 있을 때에만 강한 용사가 되고 주님 안에 있을 때에만 승리자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으로 성경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존재, 사탄을 무찌르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적인 무기로 무장해서 물리쳐야만 합니다.능히 마귀의 권세와 도전을 물리치고 승리하기 위하여 갖추어야 할 무기는 핵무기보다 더 위력 있는 하나님의 전신갑주입니다.

첫째는, 진리의 허리띠를 띠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진리’는 예수그리스도를 가르키고 있습니다.진리의 허리띠’를 띠라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중심으로 삼고, 우리 삶의 기둥으로 삼아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둘째는, 의의 흉배를 붙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의의 흉배를 붙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죄를 사함받고 주님의 의롭다함을 선물로 받아서…. 우리의 가슴에 간직하라는 말씀입니다.

셋째는, 평안의 예비한 복음의 신을 신으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살 수 있는 길을 예비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염려하지 말고 평안하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야할 길을 주님이 다 예비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얻는 불안의 복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으로 완전하게 이루어 놓으신 평안의 복음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넷째는,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방패란 무엇입니까?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므로, 주변의 환경에 동요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롬10: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라고 말씀했습니다. 무조건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이 바로 우리의 방패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다섯째는, 구원의 투구를 쓰라고 했습니다. 구원의 투구를 쓰라는 것은 “나는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확신에 찬 믿음가운데 서는 것을 말합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은 마치 구원의 투구를 쓰지 않은 사람과 같으므로…

여섯째는,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검은 하나님의 전신갑주 가운데 유일하게 공격용 무기입니다. 지금까지는 모두다 방어용이었지만 이것은 바로 원수를 찌르는 성령의 검이라고 했습니다. 마귀가 우리를 공격할 때, 우리는 지체없이 말씀의 검으로 마귀의 진을 섬멸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들을 우리가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꼭 잊어서는 안될… 한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성도의 영적 무장이 우리의 마음속에 활발하게 역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도를 게을리 하면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을 위하여 기도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세가 되고 세상의 종말이 다가올수록 세상은 타락하고 심지어 주의 종들이 타락하게 되는 사실은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끊임없이… 계속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마지막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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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침체로부터 빠져 나오려면>

by on 11.29, 2011, under 주님과 함께 (목사님 칼럼)

 인생을 살면서 한 번도 낙심하지 않은 분은 없을 것입니다. 만일 너무 자주 낙심을 한다면 그것은 우울증이라는 정신 질환이겠지만 수없이 낙심했다가 또 다시 회복되곤 하는 것이 인생일 것입니다.

낙심이란 다른 말로 하면 슬럼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운동선수들의 경우 슬럼프에 자주 빠집니다. 사람이 슬럼프에 빠지면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지고 자신감이 떨어집니다. 만사가 귀찮아지고 일하고자 하는 의욕이 뚝뚝 떨어집니다. 막상 일을 하려고 해도 집중력이 떨어질 때가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싫든 좋든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하는데 사람 만나기가 싫어집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홀로 칩거하게 되고 공동체로부터 소외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영적인 슬럼프가 있습니다. 기도하기도 싫고 성경 보기도 싫고, 심지어 교회 가는 일조차도 귀찮아질 때가 있지요. 영적인 슬럼프 역시 누구나 다 경험할 수 있는 증세인데 우리는 반드시 극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영적인 슬럼프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원인을 아는 것은 올바른 대처를 위해서 참으로 중요합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영적 침체의 원인 세 가지를 지적합니다.

첫째, 타고난 ‘기질’ 때문입니다. 꼭 마귀가 역사해서, 혹은 은혜가 떨어져서 슬럼프에 자주 빠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이 각각 다른데 유난히 슬럼프에 잘 빠지는 기질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도 타고난 기질이 워낙 낙천적이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쉽게 잘 극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쉽게 상처를 받고 낙심하는 것 또한 사실이지요. 물론 기질은 우리의 구원 문제와 아무 상관이 없지만 분명히 기질적인 차이 때문에 영적인 침체에 빠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둘째, ‘육체적인 상태’입니다. 피곤해서 탈진 상태에 빠지면 영적 슬럼프가 찾아오는 것은 사실입니다. 육체와 정신과 영혼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므로 육체적인 피로가 영적인 슬럼프를 불러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엘리야가 우상을 섬기던 선지자 850명과 싸워 이긴 뒤 극심한 피로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육체적인 탈진으로 인해서 영적인 슬럼프에 빠진 나머지 로뎀 나무 아래에서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볼멘소리를 했던 것입니다.

셋째, ‘불신앙’ 때문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고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다고 믿으면 우리는 잠시 낙심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서 의심을 하고 믿음을 잃어버릴 경우, 우리는 영적인 침체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기 어렵습니다. <영적 침체로부터 빠져 나오려면>그렇다면 우리가 영적인 슬럼프에서 빠져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낙심과 절망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도해야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기억해봅시다.

둘째로, 하나님께 소망을 둡시다.

셋째로,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인간의 낙심과 불안이라는 것이 마치 작은 멸치가 바닷물이 말라 헤엄치지 못할까 봐 쩔쩔 매는 것과 같다. 아니면 작은 고추잠자리가 하늘이 좁아 날 곳이 없을까 봐 당황하는 것과 같다. 작은 개미가 땅이 좁아 집을 지을 장소가 모자랄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것과도 같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의 대부분이 우리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인간이기에 우리는 낙심할 수 있습니다. 영적 슬럼프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우리는 우리보다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행하셨던 위대한 일들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영적인 침체를 극복하고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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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염려증>

by on 11.16, 2011, under 주님과 함께 (목사님 칼럼)

완전하신나의주

건강 염려증

현대의 정신병중에 [건강 염려증]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이 병에 걸리면 스스로 중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이 병원 저 병원을 열심히 찾아 다니며 온갖 검사를 다 해보지만 처음에는 뚜렷한 병명을 찾아낼 수가 없습니다. 의사는 이런 사람에게 신경성이므로 염려하지 말라고 충고를 합니다. 그러나 이 병에 걸린 사람은 계속 염려하며 삽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걸렸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병이라는 진단을 받게 됩니다. 이 사람은 예전에 자신의 병명을 진단하지 못했던 의사들은 다 엉터리 의사였다고 욕을 하지만, 사실은 아무 병도 없으면서 마치 자신이 병들었다고 생각하고 병자처럼 살다 보니 계속적으로 면역기능이 떨어지면서 진짜 환자가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생각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문제 중의 가장 큰 문제는 마음이 병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마음을 잘 가져야 합니다. 육신의 병이 생겨도 문제가 되지만 마음의 병은 육신의 질병보다 더욱 치명적인 문제가 됩니다. 사실 육신의 병은 마음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병들면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고 말씀했습니다(잠 18:14).
사람의 마음이 병들게 되는 것은 생각을 잘못하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대문이 있고 울타리가 있어서 아무나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에는 문도 없고 울타리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통제할 길이 없습니다. 한 순간에도 별별 생각이 다 들어옵니다. 마태복음 15:19절을 보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남을 미워하는 마음, 죽이고 싶은 마음, 음란한 마음, 원망하는 마음…… 이런 악한 생각이 사람을 병들게 만듭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악한 생각이 계속되는 이유는?
첫째, 세상이 점점 악해지기 때문입니다. 신문, 방송, TV, 잡지, 영화…… 이런 전파매체와 문화를 통해 전해 듣고 보는 악한 것들이 우리 머리 속에 입력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한 생각들이 자꾸 떠올라 사람을 악에 물들게 만듭니다.
둘째, 우리의 마음속에 아직도 타락의 속성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17: 9절에서,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마음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셋째, 마귀가 계속적으로 악한 생각을 집어넣어 주기 때문입니다. 해서는 안 되는 생각까지도 마구 떠올라 우리의 마음이 몹시 더럽혀집니다. 결국 이런 잘못된 생각들이 마음을 병들게 하고 육신도 병들게 만듭니다.
사람이 불행해지는 것은 마음이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악한 마음, 더러운 마음, 미워하는 마음, 거짓된 마음, 불안한 마음, 괴로운 마음, 분노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게 되면 우리의 마음도 지옥이 됩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잘 살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불행한 사람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행복 하려면 무엇보다도 마음에 천국을 이루어야 합니다. 늘 마음이 편안하고 기쁘고 즐겁고, 불만이 없고 만족하고 생각하면 감사한 것뿐이고, 찬송이 절로 나오고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는 이런 사람이 마음천국을 이룹니다. 그러므로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재산이 얼마냐? 얼마나 높은 자리에 있느냐? 아파트 평수가 크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만복의 근원으로 복을 주고 싶어하십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복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복을 받으려면 먼저 복 받은 마음부터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복 받을 마음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는데, 이 마음을 갖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상한 마음이나 병든 마음이 내 힘으로는 치유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실 수 있습니다. 병든 마음을 고쳐주실 수 있습니다. 건강 염려증과 같은 병든 마음을 고치는 길은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는 성령의 은혜를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기도와 찬양을 통해 은혜를 받을 뿐만 아니라 예배를 통해 말씀을 듣는 가운데 은혜를 받아야 신자구실을 제대로 하게 되고, 은혜를 받아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축복을 받습니다.
성도들이 은혜를 받으려면? 마음 문을 열어야 합니다.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좋은 것을 주십니다(시 107:9).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면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깨닫게 되고, 회개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 죄 사함을 받은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여 주님을 사랑하게 되고 충성하게 됩니다. 아무쪼록 마음관리를 잘하셔서 언제나 마음 천국을 이루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다 받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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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 다가올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by on 11.08, 2011, under 주님과 함께 (목사님 칼럼)

고난이 다가올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의미를 먼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죄로 인한 고난인가? 자고 하지 않게 하기 위한 고난인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게 하기 위한 고난인가?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고난인가? 고난은 우리들에게 큰 축복을 주십니다만 그러나 우리에게 고난에 대한 깨달음이 없이는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Arturo Toscanini (d. 1957): 토스카니니는 저처럼 음악의 문외한인 사람도 알만큼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는 본래 첼로를 공부한 첼로 연주자였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남다른 불행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심한 근시안이어서 악보를 잘 보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악보를 머리 속에 외워두고 연주에 나가는 습성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갑자기 연주회 직전에 지휘자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오케스트라 단원 중에 곡을 전부 암기하고 있는 사람은 토스카니니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는 그때 불과 19살의 어린 나이었습니다. 그는 임시 지휘자로 서게 되어 이로 인해서 세계적인 명 지휘자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만약에 토스카니니가 근시안으로 인해서 남다른 고통이 없었다면 그는 유명한 첼로의 연주자는 될는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세계적인 위대한 지휘자는 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근시였기 때문에 항상 안경을 두 개 가지고 다녔습니다. 한번은 루즈벨트가 선거 운동 중에 슈렌크라는 악한 자가 쏜 총에 맞고 쓰러진 적이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의사는 대통령의 가슴의 안 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안경 케이스를 꺼내어 보였습니다. 안경집은 산산 조간이 나 있었습니다. 악한이 쏜 총이 안주머니에 넣은 안경집의 각도를 꺾어가서 대통령의 생명의 위기를 모면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루즈벨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쇠로 만든 안경집이 무거워 항상 내게는 귀찮은 짐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것이 나의 생명을 구해주었군요.”
지금 우리들에게 무거운 짐이 있습니까? 그것이 우리의 생명을 구해주는 방파제인 것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불교처럼 깨달음만을 강조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깨닫고 난 다음에는 우리 몫에 태인 십자가의 고난을 달게 지고 가야 하는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당하는 고난으로 인해서 더욱 주님을 의지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롬 8:17절의 말씀대로 우리는 주님과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No Cross, No Crown. 십자가 없이 면류관이 없다는 말은 영원한 진리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면류관은 원하지만 십자가는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십자가 없는 면류관과 십자가 없는 부활의 기쁨은 없습니다.

(2)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가 예비한 것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앞서 행하시는 분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31장 8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믿습니까?

(3) 따라서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예수 따라가며 복음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 따라가며 복음 순종하면 우리 행할 길 환하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주가 늘 함께 하시리라.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449장(377장 1절).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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